<신용우 칼럼> 고구려 건국연대는 기원전 217년이다(제7회)

조원익 기자 / 기사승인 : 2019-05-20 10: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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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이상의 논지로 볼 때 고구려 초기 왕들의 삭감된 연도를 계산하기 위해서 무조건 5세손에 맹종하여, 대무신왕과 민중왕, 모본왕과 태조대왕과 차대왕 및 신대왕, 고국천왕과 산상왕을 각각 1세손으로 보고 거기에 유리왕, 동천왕을 합하여 10명의 왕이 5세손을 이루었으니 그 왕들의 재위연수인 267년 정도를 삭감된 것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무리한 주장이다.


 모본왕과 민중왕의 경우에서 보듯이 아들이 왕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삼촌에게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모본왕과 태조대왕의 경우처럼 친척에게로 뛰어넘을 수도 있다. 더 심한 경우에는 아들을 건너 뛴 채 아들의 삼촌에게 갔다가 아들의 아들인 손자에게 돌아와 2세손이 1세손으로 기록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가정도 해볼 수 있다.

 

 사라진 5세손이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늦추기 위한 방편이었다면, 초기 고구려의 왕들에 대한 기사 중에서 누구의 아들이라고 기록된 것이 실제로는 아들이 아니라 손자 일수도 있다는 가정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같은 왕으로 치부되었으니 할아버지의 아들로 기록하면서 세대를 잘라내서 삭감시키는 방법을 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1세손으로 계산하는 것이 2세손이 될 수도 있다. 손영종 자신도 유류, 여률, 막래왕이 3세대=3왕대로 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막래왕, 애루왕과 그 아들 3세대 간은 형제간이 국왕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그 주장대로라면 5세손 10명이 아니라 7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고구려 초기에 삭감된 5세손의 재위연수는 추모왕을 제외한 초기 다섯 왕의 재위연수를 합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견해다. 즉 유리왕부터 태조대왕까지 5명의 재위연수를 삭감된 5세손 왕들의 재위연수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조대왕과 국조왕을 혼합한 이유 역시 고구려 건국연대를 늦춤으로써 역사를 삭감하기 위한 것이니 만큼 그 과정에도 삭감한 연수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 초기 왕들의 재위연수가 대무신왕에서 민중왕과 모본왕으로 이어졌다가 태조대왕에게 이어진 경우처럼 빤히 눈에 보이는 권력투쟁으로 인해서 정상적인 재위연수에 비해 짧은 경우를 다수 포함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태조대왕의 뒤를 이은 차대왕을 포함시켜서 삭감된 5세손의 왕에 대한 재위연수를 계산하는 것은 고려해 보아야 한다.


 필자의 논리에 의해서 계산하면 유리왕에서 태조대왕까지의 재위연수는 165년이고, 차대왕까지는 184년이다. 기원전 37년에, 삭감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165년을 더하면 기원전 202년이고, 184년을 더하면 기원전 221년이다. 그리고 고구려 건국연대에 대해서 기록한 고기들이 일률적으로 고구려 건국연대가 갑신년이라고 하였으므로, 두 가지 추정된 연도에서 가장 가까운 갑신년을 찾자면, 기원전 202년과 기원전 221년 사이에 기원전 217년(갑신년)이 있다.

 

 추정한 연대와 가장 가까운 갑신년이 불과 4년과 15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상당히 근접한 것으로, 다섯 왕의 재위연수가 추정하여 산출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추론은 차대왕을 포함하지 않고 태조대왕까지 5명의 왕에 대한 재위연수를 합산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기원전 202년에서 가장 가까운 갑신년을 찾아도 기원전 217년이기 때문이다.

 

 태조대왕까지와 차대왕까지 두 가지로 연대를 계산한 것은, 추정에 의해 연대를 도출해 내는 것임으로, 좀 더 근접한 연대를 찾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을 뿐이다.
게다가 기원전 217년은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조선과 국경을 마주한지 5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진나라는 기원전 206년에 패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섰으므로, 앞에서 손영종이 고구려 건국연대를 소급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의 예로 제시했던, '삼국사기'에서 고구려가 진·한의 동북방에 있었다는 기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손영종 스스로 ‘고구려가 기원전 221년경에는 진나라와 직접적인 경계를 가지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몇 해 후에는 직접적인 경계를 접하게 된 것은 확실하다’고 서술했으면서도 무조건 기원전 221년 이전의 갑신년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것이다.

 

 만일 손영종의 주장대로 기원전 277년에 고구려가 건국되었다면 기원전 221년에 건국된 진나라를 뛰어넘어, 고구려가 연·진·한나라의 동북쪽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했어야 옳은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의 건국 연대는 기원전 217년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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