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고구려 건국연대는 기원전 217년이다(제9회)

조원익 기자 / 기사승인 : 2019-05-31 11: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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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고구려현의 위치에 대해 북한 학자들은 '조선전사3 중세편(고구려사)'에서 “'한서' 권28 「고구려전」에 의하면 고구려현의 위치는 요수(소요수)가 발원하는 지방, 즉 혼하 상류인 오늘의 청원현 지방에 있었다. 따라서 '후한서'「고구려전」에서 고구려 전체를 한나라의 고구려현으로 삼아 현도군에 소속시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나라는 고구려의 서쪽 변방에 ‘고구려현’, ‘서개마현’, ‘상은태현’ 등 세 개의 현을 가진 현도군을 설치했을 뿐이다”라고 했다.


 또한 신채호는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에서 “고구려현은 한무제가 고구려를 고구려현으로 만들려고 하다가 고구려와의 전쟁에 패하여 물러가서, 지금의 태자하 부근에 현을 하나 만들어 놓고 조선 열국의 망명자와 포로 등을 그곳에 살게 하여 ‘고구려현’이라 칭하면서 현토군에 소속시킨 것”이라고 하였다. 앞서 기술한 북한학자들의 이론과 상당부분 상통하는 것으로 결국 고구려현의 위치는 요하지류 중 하나인 태자하 유역이므로 요하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한편 북한의 손영종은 그의 논문 「고구려 건국년대에 대한 재검토」에서 “'후한서'「고구려전」에서 한 무제가 조선을 멸망시킨 다음 고구려를 고구려현으로 삼고 현도군에 소속시켰다고 하였으나, 그것은 저자 범엽이 제 멋대로 써 넣은 내용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뒷부분 저술에서 고구려가 옥저, 예를 복종시키고 신나라, 후한과 전쟁을 한데 대해서 쓴 것과는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삼국지'「고구려전」에서는 고구려를 현으로 삼았다는 말은 없고 고구려의 역사를 간단히 기록한 다음에 전한이 고취, 기인(고취악기를 다루는 악공)을 고구려에 보낸 사실을 썼으며 또 현도군으로부터 조회 때 입는 조복과 의책을 받아 갔는데, 고구려령(현도군 고구려 현령)이 그 명세를 주관하였다.

 그런데 그 후 고구려가 교만해져서 오지 않기 때문에 현도군 동쪽 경계에 작은 성을 하나 쌓고 거기에다가 조복, 의책을 가져다 두면 1년에 한 번 연 초에 와서 가져간다고 기록했을 뿐이다. 이것은 고구려가 한나라의 조선 침공 이전에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한나라의 현도군 밖에 따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사'「고구려전」에는 한나라 소제 때(기원전 86~74) 한나라가 고구려에 대해 조복, 의책, 고취를 보내준 것으로 되어있다. 또한 '위서'에서는 한 무제의 고조선 침공 이전에 추모, 시려해, 여률, 막래의 네 왕이 있었고 막래왕 때에는 부여를 정벌하여 크게 대파했다고 하였다. '북사'는 그 다음에 기원전 108년에 있었던 한나라 무제의 조선 침공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고구려는 한나라의 조선 침공 오래 전부터 있었으며 한나라의 침략 후에도 당당한 독립국가로 한나라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복 등을 보냈다는 것은 고구려가 두려워서 회유책을 쓰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도 고구려가 접수하지 않자 어떻게든 가져가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라고 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론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한나라가 고구려를 지배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주는 조복과 의책 등을 보내기 위해서 성을 따로 쌓아서 그곳에 가져다 놓고, 고구려가 가져가고 싶을 때 가져가게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이것은 가져가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며, 고구려는 한나라가 주는 물건도 받으러 오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만큼 한나라를 무시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을 볼 때, 고구려현은 고구려 내에 설치 된 것이 아니라 이름만 고구려에서 빌려왔을 뿐이다. 이미 조선이 망하고 그 유민들로 채워진 곳이지만 당시 조선은 존재하지 않고 고구려가 존재할 때이므로 ‘고구려현’이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한 무제가 고구려현으로 삼았다는 그곳은 고구려와는 무관한 조선의 유민들, 특히 위만조선의 유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고구려는 한나라 이전인 진나라 때 건국 된 것이 확실할 뿐만 아니라, 중국에 한 번도 굴복하지 않은 독자적인 국가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다.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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