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훈 칼럼>충무공 이순신 상무 혼을 부르다(5) 한반도 자국적 방위태세와 화평적 통일!

조원익 기자 / 기사승인 : 2017-09-26 11: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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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예지(武藝知)는 상무적 기풍의 충이요, 국가의 안위적 무적 요소이다. 역사는 살아있는 교훈적 지침이요, 지혜이다. 지난 과거 속 역사의 교훈을 주고 있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눈물을 흘렸던 이순신 그는 누구인가! 지금 과거 역사 속 그를 만나러 간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무패신화를 기록하였으며 투철한 구국심을 바탕으로 조선을 지켜내었다. 숭고한 그의 업적은 활쏘기를 통한 무예지(武藝知)가 담긴 무사수행의 깨우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지휘력, 통솔력, 관찰력 등의 자질과 제장들의 충성심과 구국심 그리고 지휘관들을 믿고 따른 일당백의 무명용사들이 기꺼이 구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기에 가능했다. 그는 부하장수들과 병사들에게도 그가 얻은 무예지(武藝知)의 상무적 기풍에 관한 깨우침을 주기 위해 무예 훈련을 실시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필생즉사 필사즉생" 마음이었던 그는 오르지 충은 국가와 백성이었다.


 그러나 선조와 탐관오리들의 거짓말과 중상모략에서도 그는 굳건히 나라를 지켰으며 피토하는 마음으로 일기에 기록했고 전장에 임했다. 또 하루하루 생과 사의 전쟁이었다. 그 내용이 “난중일기”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며 그는 달과 벗이 되었고 칼과 활을 비추며 바다를 보며 붓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또한 장검 날에도 그의 친필 검명이 새겨져 있다. 석자 되는 칼(劍)로 하늘에 굳게 맹세하니 산과 물이 요동치고 한 번 휘둘러 베기로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위 내용을 보듯이 충무공 이순신이 검술에도 상당히 조예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검 날에 자기 자신의 굳은 마음을 새겼을 뿐만 아니라 검을 비유해서 시조를 지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일휘소탕(一揮掃蕩)이라는 어휘적 문구가 검도에서 말하는 일도양단과 일격필살의 기법들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으며 그리고 상대를 완전히 일망타진 해 버린다는 뜻이다. 그 이치는 무예지 기법에 있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는 조선시대의 무예사와 병법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에 관련된 연구를 심도 있게 하기 위해서는 충무공 이순신의 “임진장초(壬辰狀草)”에 관한 연구가 앞으로 학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 문헌에는 전반적인 무예와 병법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임진장초(壬辰狀草)”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을 맞이하자 그 당시의 정황을 비롯하여 출전경과, 왜군의 정황, 군사상의 건의, 진중의 경비, 준비상황 등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장계한 내용을 다른 사람이 등초한 책의 이름이다. 이 “임진장초”의 체재는 해서로 등초되어 있으며 모두 61편 81장으로써 크기는 세로 46cm, 가로 33.5cm이며 표지에 “임진장초“라 쓰고 오른쪽 위에는 「만역이십년(萬歷二十年)(1592, 선조 25)」이라 써 두었다. 이 책은 아마도 조선시대의 무예사와 병법 연구에 있어서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역사상 최고의 검술가로 불리는 미야모도 무사시(宮本武藏)(1584~1642)의 <유구무구>가 담긴 “오륜서(五輪書)”의 무예지 기법을 보면, “검도의 한 번 베기로 상대를 공격할 때는 일순식간에 공격해서 베라”라는 표현과 충무공 이순신의 “한 번 휘둘러 베기로 해서 쓸어버리다(一揮掃蕩)”라는 검명에 새겨진 시조 문구가 매우 유사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이를 보더라도 충무공 이순신이 궁술은 물론 검술에 있어서도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었다는 사실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한산정에 올라가 활을 쏘며 마음을 다스렸다. 이 고뇌 속에서 병법이 생각나면 한지에 옮겨 적었으며 부하장수들 및 병사들과 의논하여 전략을 세우고 전쟁에 임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의 평상심을 바탕으로 무념무상의 경지에 올라 적을 맞이하여 싸웠다. 무예지의 훈련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심신을 갈고 닦은 그는 전쟁에서 전승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불패의 신화를 창조한다.
그는 무예지 활쏘기를 연마했는데, 즉 한산정은 충무공 이순신이 무사들과(부하장수 및 병사) 함께 활쏘기 훈련을 했다. 여기에서 과녁까지의 거리는 약 145보 정도로 활터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있는 곳은 오르지 이곳뿐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이곳에 활터를 만든 것은 밀물과 썰물의 교차를 이용해 해전에 필요한 실전거리의 적응훈련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활쏘기를 통해 내기를 하고, 패배하는 편에서는 떡과 술을 내어 배불리 먹었음이 여러 차례 “난중일기”와 “이충무공전서”에 고증되어 있다. 활쏘기 훈련을 했던 무사들의(부하장수 및 병사) 사기진작을 위한 충무공 이순신의 지혜였다. 이들 중에 활쏘기 훈련을 함께 했던 무사들은(부하장수 및 병사) 충무공 이순신이 1594년에 조정에 건의 했던 무과특별시험에서 합격된 하삼도 경상, 전라, 충청 출신의 부하장수들이었다.


 한편 전쟁은 모든 것을 잃게 만든다. 이이[李珥]는 10만 대군을 양성하자고 했으나 서인과 동인의 당파싸움 때문에 전쟁준비를 하지 못했다. 이이는 1581년에 장차 임진왜란이 발발할 것을 예지하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이는 군사훈련 등을 주창했으나 선조와 대신들의 반대와 거부로 인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충무공 이순신은 전쟁준비를 했으며 판옥선과 거북선 그리고 여러 무기류 및 총통을 완성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그 교훈을 국방 방위태세 상무적 기풍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미군에 치중하지 않은가! 우리 스스로 자생적 군사적 대비책은 되어 있는지 또 국민들 역시 국방 방위태세에 대한 안보의식은 되어 있는지 여러 모로 검토할 때다. 이는 자국적 국방 방위태세의 여러 가지 프로세스를 준비해야만 북한 김정은 정권은 무력도발[武力挑發, Armed Provocation]을 하지 못하고 한반도는 화평적 통일을 이루어 낼 수 있다. 반드시 먼저 여기에는 상무적 기풍을 통한 국가 안보 속에서 군사적 제도개선과 한반도 자주적 통일 정책방안을 이뤄내야 된다.

 
 지난 과거의 충무공 이순신 상무적 기풍을 불멸의 교훈을 삼아야 한다. 이는 북한의 무력도발에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막강한 군사력과 여러 가지 통일 정책에 대한 방안을 준비될 때 한반도 자주적 평화적 통일은 성큼 다가올 것이다.
송일훈 박사 (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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