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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의 교역에서 발생한 대 역병의 감염사실을 준엄하게 알리고 있었지만, 이를 소홀하게 여긴 오늘에 다시 중국의 일대일로의 패권적 시도의 보이지 않는 칼날에 묻어온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금 그들을 1978년에 시장경제로 개방으로 이끈 미국을 철저하게 초토화시키고 있다.
오늘의 서구인들은 이 중국 발 고통과 실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지구경제의 질서를 찾아내려 할 것이다,
역사는 모두 질서의 괘적이자 수레바퀴이다, 그래서 잘못된 수레바퀴나 괘도는 새로이 바꾸어 다른 길을 간다. 이제껏 자유민주진영인 서구는 공산주의와의 이념적 대결이 무력전쟁으로 드러나면서 이를 피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었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적대국이던 소련의 변화를 페레스트로이카로 이끌어내어 소련연방을 해체하고 오늘의 동유럽의 해방과 러시아의 재탄생을 가져왔다.
그리고 1978년 중국의 개방을 도와 오늘의 경공업생산국으로 성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소련처럼 정치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이제 중화학공업국으로 변하게 되었고, 다시 정보기술국으로 성장하기 직전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그들은 우주기술국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은 그들의 사회주의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는 이념적 속내를 드러내면서 점점 서방세계에게 다른 생각을 가지게 했다. 더욱이 그들은 소련과 달리 강점하고 있는 타 민족을 해방시킬 생각은 전혀 없이 오히려 홍콩을 다시 그들 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중화사상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런 예민한 시기에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번져나갔다. 이건 온 세계에 너무 가혹한 시련이고, 아무도 준비하지 못한 비참한 생명의 비극이다. 이미 감염자가 루마니아 국민보다 많고, 사망자가 룩셈부르크 국민보다 많다.
결국 중국은 이번 일로 다시 국제연합에서 그들의 죽의 장막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영국은 이보다 먼저 브랙시트를 결정하여 이웃 국가들의 공동체인 유럽연합에서도 돌아갔다. 미국은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다시 미국이 주도하는 기술동맹을 만들고자 세상에 알려놓았다. 4차 산업혁명을 기술동맹국 간에 새로운 내부표준으로 하자는 것이고, 여기에 들지 못하면 서구로의 수출은 불가능하다.
미국은 안보의 이유로 중국을 정보기술네크워크에서 내보내려고 하고 있지만, 속내는 중국을 여기서 더 이상 부자나라와 과학기술국으로 만들면 반드시 그들의 야욕을 참지 못하고 언젠가 무력으로 서구를 공격한다는 불길함과 두려움을 감지한 것이다,
종전에 미국은 중국의 대미 세일즈 현실을 무기로 중국을 중립으로 비키게 하고, 북한과의 핵 협상을 통해 장기적으로 중국의 핵 무력을 제어하려고 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그들의 전략은 전폭적으로 수정해야 할 처지이다. 다시 말해 중국의 영구고립으로 선회하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의 운영 메카니즘이 변하게 된다, 즉 경쟁과 비교의 국제경제가 아니라 결합과 공존의 새로운 동맹경제의 판을 짜려는 것이다, 서로서로 역할을 정하고 이익을 보장하고 상호 발전하는 국가융합적 동반성장을 선택하려고 한다. 스마트한 지능경제구조에서는 장기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하나의 가치와 하나의 도덕과 하나의 미래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나아가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통해야 한다. 소위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중에서 러시아는 사상은 크게 다르지만 종교적으로 인종적으로 유사한 나라이다. 인도는 영국의 연방국가 출신이다, 브라질은 같은 대륙에 있다. 그러나 중국은 전혀 다르다,
이미 국내의 기업들에게도 이것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벌3-4세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서로 의논하고 합심하고 결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전기 차나 배터리나 플렛폼이나 핀 테크나 바이오기술이나 서로 생산에 협력하고 개발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역력히 감지된다. 국내외적으로 같이 살고, 같이 나누고, 같이 성장하려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새로운 외부 결합적 재탄생의 경영테크닉을 기대한다.
이건 분명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이고 그 효과는 크게 기대가 된다, 품질도 더 고급으로, 상위기능으로 상품기술은 더 발전하고 그러나 원가는 더 적절하고 수량도 더 적당하게 같이 만들어 내야 한다. 따로 판매가 필요하지 않고 고객이 직접 기업에 접근하여 고르게 해야 한다, 그 고객은 그 접근에서 얻은 이미지와 소감으로 직접 그 주식에 투자도 하게 된다.
결국 코로나바이러스를 계기로 글로벌 세상은 앞으로의 교역과 교류를 서로 같은 규칙을 가지고, 안전하게 서로 믿고, 정말 투명한 상대와 재개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결합적 비경합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금 주식시장은 이런 미래를 암시하는 여러 변화들이 보인다. 특히 바이오는 시밀러와 플렛폼 생산시대를 맞아 서로 일정한 것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정보기술은 여러 인재들이 서로 옮겨 다니며 기술을 진화시킨다. 이런 구조에서는 따라서 특정 기술로 주가가 오르더라도 일정한 수준이상의 주가 버블을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머지않아 주가의 등락은 있어도 폭등 폭락은 없는 세상도 가능할 수도 있겠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경제 의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야욕과 경쟁과 독점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다. 중국이고 북한이고 나아가 일부 폐쇄적인 독재국가들도 보다 많은 인류와 공유되는 않은 무례하고 무도한 통치는 늘 고통과 함께 스스로 무덤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시기이다. 또한 차제에 저급한 상품, 저속한 문화, 저렴한 서비스는 결코 새로운 결합적 재탄생(connective renewal)의 대상이 아님을 절감해야 할 시기이다. 글로벌 증시는 지금 이런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거듭되는 격리와 거리를 경험하면서 결국 개인의 삶도 낯선 외부 인이 아니라 늘 익숙한 동네사람, 가족들 사이로 다시 돌아오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이 역시 비 경합적 인간관계이다. 참 세상은 오묘하다.
엄 길청(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역임)
글로벌애널리스트/미래경영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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