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저널리스트/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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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직업이 투자분석가여서 경제프로의 진행자로 시작한 일이고, 신문의 투자칼럼으로 손을 댄 일인데, 대학 강단으로 가면서 좀 더 확장성을 가지게 되어 대통령선거 후보자 방송토론회나 국회의원 총선거 방송토론회의 단골사회도 자주 보았다.
20년 전쯤에는 어느 공중파라디오 아침 시사프로 진행을 맡고 있었다. 지금도 그 프로는 이름을 바꾸어 여전히 그 시간에 방송을 하고 있다. 마침 내가 진행할 때 매일 나오던 기자 패널이 요즘은 그 프로의 진행자가 되어있어 가끔 반갑게 듣는다.
그런데 당시 어느 날부터인가 프로듀서는 나의 진행 멘트에 정치적 방향성이 담긴 원고를 스튜디오로 조금씩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원고내용에 지성적 중립성이 없으면 그 내용을 그대로 절대 방송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런 나를 프로듀서가 소위 압박을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진정한 가치중립적인 방송진행자로서 본연의 역할이 불편해서 어느 날 그만 두고 대학으로 옮겨 갔다. (물론 당시나 지금이나 언론이 독립성을 가지고 운영하기 어려운 여건이고 개혁의 과제가 여전한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는 외부서 영입된 중립적인 독립진행자이다.)
내 후임으로 사내 아나운서가 진행자로 오고, 곧 프로그램 이름도 바꾸더니 그 방송은 점점 하루가 다르게 유명한 정치이슈 방송으로 변하여 매일 장안의 화제와 파장을 낳기 시작했다. 내가 보아도 그동안 그 프로그램이 사회적으로 큰일도 많이 했다. 실은 지금도 들어보면 그 결은 바탕에 어느 정도 유지되는 양 하다.
주요한 정치적인 인물들을 불러내서 특정한 시각에서 공격하고, 유명정치인의 오점이나 약점을 찾아내어 다시 아프게 내비치어 그와 대놓고 생방송에서 갈등을 유발하면서 청취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방송의 맛을 보였다. 마침내 그 아나운서는 일약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지금은 모 방송의 경영자로 가 있다. 내가 그만 둘 무렵에 이런 시도를 한 담당 프로듀서도 그 후 시대의 저항성을 표현하고 중요한 비판이슈의 역량을 보이며 성장하여 최근까지 타 방송의 경영자를 지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한국 언론들이 온 국민이 원하는 본연의 진실성과 객관성과 중립성을 떠나서 특정한 어느 정파나 각기 한 쪽으로 경도된 이념의 입장을 가지고 신문이나 방송을 장악하려는 내부투쟁을 대놓고 전투처럼 연대하여 시작한 사회정치 싸움의 도입기라고 보인다. 필자는 그 때 모 TV뉴스 방송의 시사토론프로 사회자로도 몇 년간 방송 일을 했는데, 그곳도 대통령선거가 지나가고 나면 사장과 국장들이 바뀌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 우린 방송이나 신문이나 프로그램 이름만 보면 어느 정당이나 정파와 가까운 방송 프로인지 온 국민이 다 아는 기가 막힌 언론실종의 시대를 무슨 불감증이나 실어증 환자처럼 버젓이 두 눈뜨고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방송이나 신문은 진실과 사실의 보루이자, 진정한 규명자이고, 냉엄한 평가자로서 영원한 중립과 존엄을 지키면서 하등의 정념(sentiments)을 벗어나고자 하는 추상같은 결기가 서려 있어야 한다. 그걸 소위 저널리즘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특히 몇몇 방송과 신문을 보라. 이게 무슨 언론이고, 이게 무슨 지팡이이고, 이게 무슨 목탁인가. 지나가던 소가 다 웃을 일이다.
정말이지 우리 언론은 더 이상 이러지 말자. 조금 살림이 궁색하면 예전 선배같이 우국지사처럼 입성이나 곡기를 좀 거칠게도 하며 버티고 살아보자. 그래도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랴. 그리고 누구라도 꾸짖고 나무라고, 누구도 살갑게 품고 다독이며, 그렇게 당당히 사회의 영혼으로, 국민들의 사랑으로, 국가의 자부심으로 살자. 그러려면 자고로 언론이란 누구랑 편을 들거나, 어디랑 패거리가 되거나, 하나의 파당적 구성원이 되지 말자.
영원한 언론인 월터 리프만의 책을 보라. 필자는 대학시절 이 책으로 공부를 했다.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이자 워싱턴주재 대기자인 제임스 레스턴과, 전설의 미국 CBS 앵커인 월터 크롱카이트의 책으로도 배운 기억이 난다. 그들은 스스로가 하나의 도덕적 기준이고 별도의 지성적 정부였다.
요즘 일부 채널은 아예 SNS의 유명 유튜버들과 그나마 그들의 인기조차도 좀 나누고자 같이 방송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물론 거기에도 좋은 내용이 많을 게다. 하지만 그들은 그게 사적인 생업이고, 언제까지 그 자리에서 경쟁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치열한 콘텐츠창작시장의 숨 가쁜 사업가들이 주로 많다. 갈수록 SNS도 좋은 콘텐츠로 다양해지고 더 우수해지겠지만, 아무튼 언론의 그런 제휴는 아직은 참 신중히 해야 한다. 신문과 방송은 국민의 대표이자 나라의 얼굴이고 누가 뭐래도 공익대변자인 모두의 언론이다. 차라리 국민들에게 언론세를 걷어서라도 모두 공익언론으로, 국가의 양심으로, 지성의 푯대로 나아가도록 온 국민들이 나서서 지키자.
이젠 언론이 누구의 나팔수이거나, 항상 소란스러운 불편한 화자이거나, 세상의 평정과 고요함의 공연한 훼방꾼이 되어선 안 된다. 또 아무나 나와서 마치 악동들의 치기를 배설하듯 말하는 질박한 교언으로 채워지는 방송활동이나 글쓰기도 이즈음엔 우리 언론들이 스스로 퇴고해야 한다. 우린 원래의 제 자리로 어느 날 교교히 돌아온 우리의 자랑스러운 언론들을 다시 보고 싶고, 이게 바로 “K-언론”이라고 세계문명에 자랑하고 싶다. 이 대선시국이 가기 전에 언론은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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