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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상 박사(재정경영연구원장) |
이번 주에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다. 이 회담의 결과에 따라 한반도 문제에 청신호가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남북통일이 코앞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다음 날 우리에게 아주 역사적 의미가 있는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이한다. 100년 전에 우리 선조들은 일제 강제통치에 대해 맨손으로 항거했다. 그 결과에 따라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틀이 되었다.
북미 정상회담과 3.1만세운동 100주년이란 역사적으로 기념비적 일이 이번 주에 일어난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서 본다면 아주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공통분모는 바로 평화다.
북미 정상회담의 궁극적 목표는 남북의 평화이고 동북아의 평화이자 전 세계의 평화다. 핵문제라든가 경제제재는 지엽적이고 일시적이다. 이를 해결하는 것도 결국은 평화의 길을 열기 위해 북미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만난다.
평화는 인류가 오랫동안 해결하려는 원초적이고 핵심적인 과제였다. 예로부터 기독교 사상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뛰어난 선지자는 평화 사상을 강하게 전파해 왔다. 특히 나폴레옹 전쟁 시대를 격은 이마누엘 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출간해 자신의 철학 사상을 완성했다.
근대 우리나라의 평화 사상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가장 돋보인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안중근은 사형당한 최후의 순간까지 동양평화론을 설파했다. 그는 한중일 3국이 공동체를 세우고 군대와 동일화폐 등까지 만들자는 주장으로 이미 현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안중근의 평화 사상이 3.1만세운동에 영향을 끼쳤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지만, 거의 동시대 걸쳐서 생긴 일이다. 3.1만세운동도 기본적으로는 평화적 시민운동이었다. 이에 대한 일제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으로 사상자가 발생하고 소요가 일어났지만, 당시 20세기 초 폭력의 시대에서 그 예를 볼 수 없었던 평화적 시민운동이었다.
이에 대한 증거로서 일제가 판결한 재판내용을 보아도 일제의 검찰은 내란죄, 폭동죄로 기소했지만, 대부분 단순 소요죄로 무죄에 가까운 선고를 받았다. 또한 당시의 세계 언론도 3.1만세운동의 비폭력 운동을 극찬할 정도다. 이에 인도 간디의 평화운동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3.1만세운동이 평화로서 세계사에서 큰 획을 그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후 4.19, 5.18과 1987년 6월 항쟁은 근본적으로 평화적 시민운동이라는 맥락을 같이 한다. 더구나 최근 광화문의 촛불혁명은 아름다운 평화운동이 무엇인지 세계인에게 확실히 보여줬다. 현재의 우리는 3.1만세운동의 평화 사상의 토대에서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헌법에서도 평화의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전문 “평화적 통일의 사명” “항구적인 세계평화”, 제4조 “평화적 통일 정책”, 제5조 “국제평화의 유지”, 제66조와 제69조 “조국의 평화적 통일”, 제92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에서는 평화적 통일을 위한 원천적 준비가 부족하다. 먼저 통일 준비는 여야가 합심해서 마련해야 한다. 이는 정치권에서 철저한 토론과 검증을 통해서 각고의 노력으로만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근시안적으로 자신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바쁘다. 진정으로 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정치가가 있을까 의문이다.
하노이에서 열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여야의 논평이 제각각이다. 3.1만세운동에 대한 생각도 남북 혹은 여야의 시각차가 많아 보인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번 기회에 100년 전에 3.1만세운동의 평화 사상을 기틀로 삼아야 한다. 이로써 남북이 평화적 통일의 길을 닦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 온 겨레의 생각이 아닐까.
조규상 박사(재정경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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