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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냐 하면 보수가 없으면 진보도 없다. 보수가 없으면 진보가 천년만년 누릴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보수가 없으면 진보는 스스로 자폭한다. 보수 역시 마찬가지다. 진보가 없으면 보수는 썩을 것이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의 세력 균형이 제일 중요하다.
지난 일 년 동안 보수는 나락으로 빠졌다. 지금까지 보수가 걸어온 가치체계가 완전히 붕괴했다. 평소에 보수를 추구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잃고 있다.
그렇다고 진보도 좋아할 일은 아니다. 스스로 자만에 빠져서 활개를 치고 있을지 모르지만 길을 잃기는 보수와 다를 바가 아니다. 무엇보다 공격의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스스로 보수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보수라고 말할 수 없다. 보수 대다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에서 진보는 상대가 보이지 않아 불안하게 되었다. 미래가 불확실하게 된 것이다. 미래가 불안한 상태에서 정치도 경제도 안보도 안개 속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먼저 보수란 무엇인가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보수도 살고 진보도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보수주의의 원류를 찾아가면 프랑스 혁명(1789)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원래 현대 보수주의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797)가 그 시조이다. 버크는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데 그 자신은 당시 영국에서 당시 진보적 휘그당 소속의 하원의원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고 그 진행 과정에서 과격하고 급진적인 폭력이 난무하게 되었다. 기존의 국가체제가 부정되고 국왕과 왕비가 처형되며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했다. 이것을 바라본 도버해협 건너편의 진보주의자 버크는 프랑스 젊은 신사에게 주는 편지 형식으로 “프랑스 혁명의 성찰”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이 바로 현대 보수주의의 바이블이 된 것이다.
이 책에서 버크는 자연과 전통을 중시하고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체제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연과 전통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점차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즉 “무언가 변화의 수단을 가지지 못하는 국가는 스스로 보수(保守)하는 수단이 없다.” 이런 수단이 없는 것은 그 국가가 가장 중요하게 유지하려는 체제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폭력적이고 과격한 변혁으로 이어지지만, 결국 실패한다는 버크의 경고가 현실화되었다. 이후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까지 약 150년 동안 혁명과 반동을 거듭하며 정치적 혼란을 가져왔다.
버크의 이런 보수적 사상은 19세기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공감을 불러와 서구에서 보수주의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 결국은 인류가 점진적인 개혁이라는 보수의 가치를 실현하며 안정적인 정치 체제를 구현하고 산업혁명에 투자해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지라는 지배자 자본가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라는 노동자의 인권과 지위가 향상되어 피지배자도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질화(Einheit, 통일성)이라 독일 정치철학에서는 말한다.
보수는 때로는 답답하고 부패하지만, 그래도 균형을 잡아준다. 개혁에 서두르는 진보를 보수가 중심을 잡고 조율하며 경제발전을 주도해 온 것이 인류의 역사적 경험이다.
지금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중요한 시점에서 한국은 새로이 진보정권이 탄생했다. 내년에는 헌법이 30년 만에 개정된다. 우리는 지금 전환기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나락에 빠진 보수가 올바로 제 자리를 잡아야 진보와 함께 터닝 포인트를 돌아 선진국에 들어설 것이다.
조규상 박사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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