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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은 입법에 의한 대통령 통치행위가 아니다. 국정 현안 관련,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하면 정부 및 청와대가 답하겠다.” 이런 국정 운영철학은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민주주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종류의 청와대 게시판은 국민주권과 배치된 위험한 생각이다.
청와대 게시판은 이미 그 부작용도 많이 나오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인민재판”이란 비판을 받아도 싸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의 근본원리가 되는 국민주권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통치형태다. 그러므로 현 정권은 여론 정치를 속히 중단하고 국회를 중시하고 국민대표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 발전에 제일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주권을 표방하고 있으므로 청와대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통치행위를 펼쳐야 당연하다.
그렇다면 국민주권은 무엇인가. 먼저 국민주권은 인민주권과 대비된다. 주권자를 국민(nation)으로 보는 국민주권과 인민(people)으로 보는 인민주권은 오랫동안 서구의 헌법과 정치이론에서 대립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북분단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인민”이란 단어가 터부시되어 왔다. 국민주권과 인민주권의 개념 구분이 모호하고 무조건 인민주권은 제외되었다.
그 결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국민주권의 개념은 알 듯 모를 듯 모호하고 추상적인 것이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국민주권은 간접민주제(자유민주주의), 인민주권은 직접민주제(공산주의)와 가깝다. 이것이 국민주권과 인민주권 이론의 핵심이다. 따라서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은 국민이라 말하지 인민이라 말하지 않는다. 북한은 반대로 인민이라 말한다.
다만 대한민국 정부가 번역한 헌법에서는 우리말 “국민”의 번역을 “people”로 표현한 부분이 많다. 미국 연방헌법에서도 국민의 단어가 “people”이다. 즉, 인민(people)이라고 해도 인민주권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전통적 국민주권은 오로지 국회만이 국민의 주권을 대신한다. 이것을 순수대표제라고 말한다. 주권자인 국민(nation)이 선출한 대표는 선거민의 이익에 귀속되지 않는다(명령위임금지). 국회의원은 자신을 선출해 준 국민(선거민)의 이익을 위한 대표가 아니라 전 국민을 대표한다.
이러한 이론이 정당화된 이유는 원래 부유층 남성만 선거권을 가진 제한선거 아래서 소위 배우고 가진 자들이 대표로 선출되면 양심에 따라 국가를 위해 명예직 의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간접민주제가 정당화되고 주권자는 국민(nation)으로 추상적인 전체가 되었다.
한편, 모든 남녀 성인이 선거할 수 있는 보통선거가 확립되면서 직접민주제 요소가 헌법에 도입되었다. 일찍이 바이마르헌법에서 “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제 일부가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민주제가 히틀러 나치에 이용되어 독재가 정당화되는 치명적 결함을 노출했다. 따라서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직접민주제가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모든 정부의 정책에 대해 국민 의사를 묻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게시판과 같은 여론 정치는 아주 위험하다. 정부는 법률이 정한 범위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직접민주제를 반영하는 것이 옳다. 아무리 국회가 일하지 않아도 정부는 국민대표인 국회와 함께 정책을 논쟁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청와대가 여론 정치를 하고 싶으면 인민주권으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조규상 박사(재정경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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